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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고대의 다양한 디자인

memo_d 2021. 10. 2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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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Josefa nDiaz on Unsplash

고대의 디자인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제국의 건설로 그리스 미술은 몇 개의 작은 도시 국가를 벗어나 세계의 절반에 해당되는 지역의 조형언어로 발전했으며 이 후기의 미술은 그리스 미술이라고 하지 않고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동방의 나라에 건설한 제국의 이름을 따서 헬레니즘 미술이라고 하며 이 제국의 풍요한 수도들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티오크 그리고 소아시아의 페르가몬 등에서는 도리아 양식이나 이오니아식 건축의 우아함에서 벗어나 기원전 4세기 초에 고안된 코린트 양식이 유행했으며 일반적으로 건물 전체에 더 많은 화려한 장식물을 입혔고 그리스 미술의 양식과 창의성은 오리엔트 왕국들의 규모 및 전통과 융합되었고 그리스 미술은 대부분 헬레니즘 시대에 변화를 겪게 되는데 헬레니즘 미술은 초기 그리스 조각의 조화미와 세련미 대신 거칠고 격렬한 작품을 선호했으며 보는 사람들에게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인상을 주기를 원했고 또 확실히 보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남부 이탈리아와 시칠리아 섬에서 로마인과 그리스인의 교류가 시작되었는데 처음에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에 압도당했으며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미술뿐만 아니라 시 수사학 철학 등에도 매료되어 많은 지식인들과 장인들(교사 학자 사상가 조각가 화가)을 고용하였으며 로마인들은 당시 유행했던 헬레니즘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스 조각들을 대량으로 복제하긴 했으나 점차 자신들의 특징적인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고 로마 예술은 고전기 그리스 예술보다 지적이고 이상적인 면은 덜하였지만 현실적이고 기능적이었으며 로마의 건축가들은 아치와 궁륨 돔을 개발한 것 이외에도 콘크리트를 최초로 사용했으며 이 같은 혁신적인 건축기술로 인해 로마인들은 최초로 받침대 없이 거대한 내부 공간을 덮을 수 있게 되었다.

 

 

콜로세움이라는 거대한 원형 경기장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매우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오늘날 스타디움의 디자인에도 응용되고 있으며 중세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5세기~15세기) 약 1000년 동안의 시기를 말하며 기독교가 내세의 구원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지상의 물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경향은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누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심지어 옷을 입고 있는 육체도 해부학적인 정확성이 무시되곤 했으며 신학자들은 산지들이 물질의 아름다움을 통해 신성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고 그 결과로 매혹적인 모자이크와 회화 조각품이 만들어졌으며 초기 기독교는 합법적이지 않은 종교여서 온갖 박해와 수모를 겪었으며 박해가 심할수록 그들은 로마의 지하묘소 카타콤에 숨어서 복음을 전파하고 벽과 천장에는 벽화를 남겼고 국교로 승인 후 고도의 기능을 갖춘 건축가에 의해 여러 곳에 거대한 성당이나 수도원이 세워지고 교회 벽면과 천장을 장식하기 위한 회화나 초기 벽면 모자이크가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건축에서 신성에 대한 지향은 보다 밝고 가벼운 건물의 형태로 나타났고 육중하고 거대한 로마 건축은 서서히 사라지고 이상적인 기독교인 상이 건축에 반영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밖에서 보면 소박하지만 내부는 성령을 상징하는 모자이크 프레스코 스테인드 글라스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중세의 디자인

 

중세 미술의 황금기로 불리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긴 기원 후 330년경부터 이 도시가 투르크 족에 의해 멸망한 1453년까지 지속됐던 지중해 동부 지방의 예술이며 로마가 야만족에의 의해 멸망하여 잿더미에 있을 당시 비잔티움은 초기 기독교 미술을 발전시켰으며 문명의 중심지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비잔틴 미술과 건축의 복잡한 형식으로부터 오늘날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의미의 비잔틴이라는 단어가 유래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모자이크 작품 중 몇 개가 5~6세기 터키의 비잔티움과 이탈리아의 라벤나에서 제작되었고 모자이크는 국교로 공인된 기독교의 강령을 널리 유포하기 위해 제작되었으므로 그 주제는 대부분 종교와 관련이 있었고 예수는 전지전능의 지배자나 설교자로 표현되었고 당시 모자이크는 반짝이는 황금의 배경과 후광에 둘러싸인 성자들을 화려하고 장대하게 묘사한 점이 특징이며 로마네스크라는 명칭은 로마와 같은 이라는 뜻으로 19세기에 고안된 말이며 원래 이용 어는 주로 건축에서 사용된 것으로 11세기 후반과 12세기 유럽의 전형적인 건물들이 두꺼운 벽과 아치가 있는 고대 로마의 석조 건축과 닮았음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로마네스크 건축의 가장 특징적인 형태는 궁륭(vault)의 이용이며 가장 간단한 궁륭은 옆으로 확장된 아치형으로 원통형 또는 터널형 궁륭이며 이런 종류의 지붕은 아주 무겁고 건물 내부에 채광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고대 로마의 건축가들은 교차 궁륭을 발전시켰으며 이것은 두 개의 원통형 궁륭이 직각으로 교차하여 네 개의 버팀 기둥 위에 닫집 모양을 이룸으로써 만들어지며 평면에다 교차 궁륭을 짓는 것이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개방된 이 형태는 건물 내부에 더 많은 빛이 들어오게 해 주었으므로 호평받았으며 이 두 형태 원통형 궁륭과 교차 궁류는 거의 모든 로마네스크 교회에 이용되었으며 시각적으로 이 궁륭들은 견고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고 외관은 유연한 형태를 띤다.

 

중세 예술의 업적 중에서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경이로운 업적을 필적하는 것은 바로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이었고 늑골 궁륭과 부연 부벽이라는 외부 버팀목의 발명으로 1200~1500년 사이 건축가들은 세계 건축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이 솟구친 내부를 가진 복잡한 구조물들을 건설했으며 고딕 성당은 육중한 벽 대신 커다란 스테인드 글라스를 설치한 창을 통해 밝은 빛이 들어와 내부를 환하게 밝힐 수 있었고 격자 문양과 더불어 위로 상승하려는 듯한 수직성 또한 고딕의 특징을 이루고 있으며 건축가들은 첨두아치를 사용하여 높이를 실제로 높였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더 높아 보이는 효과를 가져왔으며 고딕 성당에서 주로 사용된 장식물은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타피스트리를 들 수 있으며 샤르트르 대성당은 중세 정신의 진수로 이 안에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는 전 면적이 약 896 미터에 이르며 중세의 직 조인 들은 당시의 일상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한 고도로 섬세한 타피스트리를 만들었고 이러한 양모와 실크가 배합된 걸개들이 성이나 교회의 차가운 벽조를 장식했으며 베틀 뒤에는 커다란 그림을 놓고서 직조해 나갈 때마다 디자인을 모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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